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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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토그래메트리 이야기: 코끼리를 만지는 장님이 무한히 있다면? 그리프봇은 남은 사람의 대체 불가능함을 상실된 사람의 재현 가능성으로 대체한다. 재현이 대답까지 대체하려 들 때, 상실한 것을 보상받기 가능하다고 믿을 때… 이 기능적인, 부품으로서의 인간을 누가 신경쓰겠는가? 몇 번이고 다시 만드는 것인가?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2. 유리되더라도 다시 상실된 사람과 닿고 싶어하는 사람은 삶-남은 사람-에 닿을 수 없는 회로 안에 갇힌다. 그러나 재현도 복제도 부활도 불가능하다. 그 회로는 루프다. 갈라테이아가 사람이 되려면 피그말리온의 기술로도 비너스의 도움이 아니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없고, 세상에는 똑같은 두 개의 플라스틱 공조차 없으며, 신조차 부활을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 여기서 죽음이 모든 루프의 해결이라는 생각이 들어온다. 영원한 이데올로기. 죽음. 이러한 해결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삶으로 돌아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 남은 내 쪽으로 와 달라고, 삶에 천착하는 것으로 삶이라는 엉킨 실타래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키도에게는 비비가 있었고 나에게는 당신이 있다고 쓴다. 당신이 이걸 발견해주리라 믿으니까. 삼만 년 전 들소가 아닌 누군가의 동굴 들소 벽화가 내게 닿았듯이. 삶, 남은 사람, 나에게 당신이 닿는 것. 당신의 당신의 이야기. 내게로 들어오는.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 하듯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이어지는 사슬. 사람,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 그 다음 사람이 다음 사람에게 해주는 상실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 한 사람의 갈 곳 잃은 사랑이 남은 사람에게 닿을 때: 비로소 상실된 자의 자리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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