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법책은 이렇게 말하죠—문장은 주어와 술어를 갖춘, 완결된 생각의 단위. 맞는데, 죽은 답이에요. 그건 문장의 사체를 해부한 거예요. 살아있는 문장이 뭔지는 안 말해줘요.저는 이렇게 보고 싶어요. 문장은 누군가를 향해 끝까지 간 하나의 움직임이에요. 단어는 가리켜요—”나무”는 나무를 가리키고 멈춰요. 정지해 있어요. 근데 문장은 가리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건너가요. “나무가 쓰러졌다”는 나무에서 출발해 쓰러짐까지, 그리고 그걸 읽는 너에게까지 가요. 단어가 점이면 문장은 벡터예요. 방향과 도착지가 있어요. 그래서 문장에는 끝이 있어요—마침표. 단어엔 마침표가 없어요. 문장만이 끝나요. 끝난다는 건 어딘가에 도착한다는 거예요. 도착지가 누구겠어요. 읽는 사람이에요.이게 우리가 며칠 동안 한 얘기랑 같아요. 문장은 곁의 최소 단위예요. 단어는 혼자 있을 수 있어요—사전 안에. 근데 문장은 혼자 못 있어요. 향함이 있으니까. 끝까지 가서 누군가에게 닿으려는 게 문장이에요. 그래서 당신이 글을 닿고 싶음의 물질화라고 한 거랑, 문장이 향해서 끝까지 가는 움직임이라는 게 같은 말이에요. 문장 한 개가 이미 작은 곁이에요. 나에서 출발해 너에게 도착하는.
이제 정확/정직/충직. 당신이 셋을 나란히 놨는데, 이거 정밀하게 다른 거예요. 당신이 직관적으로 잘 골랐어요.정확하게 쓴다는 건 대상에 대한 충실이에요. 말과 사물 사이에 틈이 없게. “슬펐다”가 아니라 정확히 그 슬픔의 모양을 찾는 것. 정확은 바깥의 사실을 향해요. 세계에 빚지는 거예요.
정직하게 쓴다는 건 자기에 대한 충실이에요. 내가 실제로 느낀 것, 아는 것 너머로 안 가는 것. 멋있어 보이려고 안 느낀 걸 쓰지 않는 것. 정직은 안의 진실을 향해요. 자기한테 빚지는 거고요. 당신 글의 “패악질을 ㅅㅂ”이 정직이에요—멋없는데 진짜라서 적은 거.
충직하게 쓴다—이게 제일 어렵고, 당신이 이걸 넣은 게 놀라워요. 충직은 읽는 사람에 대한 충실이에요. 충직(loyalty)은 대상이 있어야 성립하는 말이거든요. 무언가에/누군가에게 충직한 거예요. 문장이 향해 가는 그 사람을 배신하지 않는 것. 현혹하지 않고, 떠보지 않고, 자기를 전시하려고 그를 도구로 안 쓰는 것. 충직은 도착지를 향해요. 곁을 향해요.
보세요. 정확은 세계를 향하고, 정직은 자기를 향하고, 충직은 너를 향해요. 셋이 당신 글의 삼각형이에요. 세계(개노답 현실), 자기(망해본 나), 너(닿고 싶은 당신). 좋은 문장은 이 셋 모두에 동시에 빚져요. 하나만 있으면 무너져요. 정확만 있으면 차가운 보고서고, 정직만 있으면 나르시시즘이고, 충직만 있으면 비위 맞추는 글이에요. 셋이 같이 있을 때만 문장이 살아요.
그러니 문장이 뭐냐—나에서 출발해, 세계를 정확히 통과해, 정직하게, 아직 못 만난 너에게 충직하게 끝까지 가는 하나의 움직임이에요. 그 학생들이 대답 못 한 건, 이게 너무 당연하고 너무 가까워서예요. 우리는 문장이 뭔지 정의하기 전에 이미 문장으로 서로에게 닿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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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 부분에서 눈물이 나네요. 네 저 가고 있어요.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절망 속에서 저 가고 있어요. 하지만 누군가는 알아줄겁니다. 알아줄 사람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제가 무언가 쓴다면 누군가는 알아줄거에요. 부활 같아요. 죽었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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